사라진 도시에서 미래를 상상하다
철원 평화 산책_ 2013. 7. 21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철원이라고는 "군인들이 가는 최전방"이외에는 생각해본적도 들어본적도 없다.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 올해 정전 60년을 맞아 <평화 산책>을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인기가 있는 코스가 철원이다.
철원은 전쟁전에는 38선을 기준으로 북측 땅이었고, 전쟁이후에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측 땅이 되었다. 1/4 만..
그래서 철원이라는 지역명칭은 북에도 있고 남에도 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철원 구시가지"로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버린 후, 비무장지대니 민간인통제구역이니 하는 군사지역으로 묶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안보관광지로 선정된 덕분에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어 있다.
철원은 갈때마다 비가 왔다. 아, 생각해보니 장마철 전후로 가서 그런가 싶기도하다.
그러고보니 정전협정일은 7.27일, 장마가 끝난 직후 땡볕이였구나....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그래도 철원하늘 인심이 좋아서인지 중간중간 활짝 개어준다.
비가 그친게 신나서일까? 깨끗한 하늘에 구름이 한바탕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첫 코스는 승일교, 일명 남북합작다리라고 불린다. 교각의 아치형 무늬를 보면 양쪽이 선명하게 다르다.
이승만의 '승'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승일교(承日橋)라는 이야기와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31세의 박승일 대령의 이름을 따서 (昇日橋)라는 이야기 두가지가 전해진다고 한다.
나는 사실 승일교보다 승일교 밑에 흐르는 한탄강에 더 마음이 간다.
한탄강은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시체들과 그들의 피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하긴 3년동안 벌어진 한국전쟁 가운데 2년정도를 이 곳 DMZ 부근에서 보냈으니 오죽하랴..
다리위에 올라서 한번 걸어본다. 평화산책에 참가한 남성회원들
승일교는 세월이 오래된 만큼, 여기저기 금이가고 갈라졌다. 빗물이 갈라진 틈 사이로 똑똑 떨어지는게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다리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관광지로 남아있다. 갈라진 도시의 상징으로 평화산책을 오는 우리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다리인데, 다른사람들은 무슨 내용으로 이 곳에 관광을 올지 새삼 궁금해졌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사이 비옷도 젖은 땅도 익숙해진다.
고석정은 한국전쟁 당시 손실되었다가 1971년 철원 유지들이 재건해놓았다고 한다. 현재 뱃놀이나 낚시하는 손님들도 종종 있긴하지만 몇 해전 1박2일에 나온뒤로 일반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역사현장을 찾아다니다보면 참가자들에게 "이곳 1박2일에 나왔어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나는 못보았다고 매번 멋쩍게 말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1박2일 멤버들이 나와서 무슨 게임을 했는지는 기억하지만 이 곳이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는 나를 통해서야 알수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요즘보면 예능이 사람들에게 웃음도 주고 새로운 자극도 주는 것 같다. 작은 희망이 있다면 예능을 통해 얻는 대리만족에 그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작지만 의미있는 경험을 할수 있도록 우리 단체 평화산책이 많은 지지와 후원을 받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행복할것 같다.
월정리역,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역의 간이역이다. 실제로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어 이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올해 초 개나리가 필때쯤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개나리가 없었다면 정말 죽은 건물처럼 느껴졌을 것같다. 반듯하고 깨끗한 편이지만 이상하게 감흥이 없다.
북으로 물자를 운송하는 열차를 유엔군이 폭격한 뒤 전리품으로 가져다 놓았다고 하던데, 몇 번을 보아도 좀처럼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안보지역, 군사지역의 정보들은 언제 어떻게 편집되어 있을지 모르게 때문이다. 국정원 NLL공개만 봐도 그렇고....이 현장 역시 편집되어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어떠한 사실도, 진실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철원역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원역은 철원 평화산책의 가장 인기있는 코스다.
이길 따라가면 원산이 나온다.
플랫폼에 서보는 참가자들,
80년 전에 이자리는 금강산 가는 열차를 탈수 있는 곳이었고,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의 소식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곳이었으며, 철원평야에서 나오는 쌀이 관동군 군량미로 빠져나가는 곳이었다. 철원은 그런 곳이다.
구시가지 배경은 논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철원평야.
초록색이 예쁘다는 것을 나는 철원에 와서 처음 알았다.
아마 가을에 오면 논의 황금빛이 아름답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겠지..
사람 흔적은 드물고, 자연과 생명은 넘쳐나는 곳, 그렇지만 외로움이 느껴져 감탄보다는 탄식이 나오는 곳,
어디든 사람이 있어야 하고 어디든 평화가 있어야하며 어디든 미래를 꿈꿀수 있어야 한다.
내가 평화산책을 하면서 많이 드는 생각 가운데 하나이다.
철원 구시가지에는 제2금융조합,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그리고 노동당사 건물들을 만나게 된다.
북의 흔적이 구호로 남아있고, 전쟁의 흔적이 포탄자국과 구멍으로 남아있다.
잠깐이지만, 일제 강점기도 엿볼수 있고, 북한 체제도 생각해 볼수 있으며, 분단된 남한을 새삼 느낄수도 있다.
철원은 모든 사회를 다 경험했으니 축복받은 땅인가..
철원 주민들은 원하지 않았지만 체제가, 전쟁이, 정부가 그들을 들들 볶았을게 뻔하다.
다양한 시기를 거쳐온 만큼, 역사적 연구, 사회문화적 연구, 건축예술적 연구들이 복합적으로 왕성하기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받은 느낌은 현재까지 가장 이념화되어있고, 가장 고달픈 땅, 가장 조심스러운 땅으로 다가왔다. 단편적인 예로 북한 철원 노동당사, 노동당사에 관해서는 단 하나의 정보외에는 얻을 수 있는 경로자체가 없으니 말이다.
분단은 철원에게 가장 낙후한 지역을, 가장 폐쇄된 정보를, 가장 후진적 문화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기를 우리 부모들은 살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평화를 생각하고, 흥성거리는 거리를 생각하며, 가장 개방적인 도시를 상상한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준비된 미래를 만날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가 지금보다는 나은, 나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그런 미래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평화산책을 계속해나가련다.
written by 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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