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에 ‘구경’갔었다. 책 전시 한가운데 있던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맞닥뜨린 센 인상 같은 느낌. 필독서 목록에 넣어뒀지만 그 때 바로 읽지 않았던 것은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덜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가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 책 1부에서 서승 자신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운동을 사명으로 하게 된 삶의 여정을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지하지만 어렵지 않게 동아시아의 문제들을 들을 수 있었다.
「 감옥에서 출고하니 역사와 사회가 내게 부여한 사명이라는 것이 따라다녔다…….이렇게 내게 따라다니는 호가
너무 무겁고 성가시게 느껴져 몇 번이나 벗어던지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62p
재일동포로서 일본사회의 차별을 벗어나 한국으로 유학을 온 그가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되었다. 그리고 19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가 출소한 직후 여러 나라들의 초청강연을 다니면서 한국의 군사독재와 국가폭력에서 동아시아의 국가폭력과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전쟁과 테러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었다.
「 오키나와 조선 그리고 타이완은 일본이 서구를 모방해 자본주의화를 꾀하고 부국강병을 외치면서
아시아 침략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제물로 바쳐졌다」-71p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오키나와 조선 그리고 타이완은 모두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양상과 지금 일본과의 관계는 매우 다르다.
류큐왕국이었던 오키나와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 아시아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병합되었다. 조선은 그 뒤에 병합되었다. 조선과 굳이 비교하자면 오키나와는 일본으로부터의 독립보다는 일본본토로 강력하게 편입되어 섬으로서의 차별을 줄이고자 하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실제 독립이 되기에는 이미 미군기지로부터의 의존성은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부터 식민화되었다는 것, 미국에 의해 동아시아의 냉전과 군사대결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타이완(대만)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50년이나 받았지만, 일제가 패망한 후 들어앉은 국민당의 장개석이 너무도 악랄해 반일감정은 오히려 희석되었다. 장개석이 1949년 선포한 계엄령은 그 뒤 38년 동안이나 유지되었다. 50년 백색테러라 불리는 탄압정치는 50년부터 54년까지 3000명이 처형당했고, 8000명이 투옥됐다. 투옥자의 형량을 더하면 2만년이 넘었다. 1996년 총통이 직선제로 바뀌면서 민주화는 시작되었다. 현재 타이완의 독립운동은 중국에 대한 반감이 강하고 친일 친미의식이 팽배하다. 심지어 청일전쟁에서 일제의 승리에 감사한다든지, 일제의 타이완 식민지지배를 기념하기 위해 모여들어 '고별 중국'이라는 플랜카드를 앞에서 시위행진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미중간의 군사대결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되고 있다.
한반도와 일본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무엇보다 분단으로 인한 냉전·반공논리가 한국의 민주화 뿐만 아니라 일본사회의 정상화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북한의 핵실험을 빌미로 재무장에 힘을 쏟고 있는 일본은 국내에서는 반공논리가 확산되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북일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납치사실’을 인정하면서 ‘북한 악마론’은 고착화되었고 그 피해와 보복은 고스란히 재일동포에게 돌아갔다. 일본의 우경화를 촉진시키는 밑거름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미국이 일본의 군사재무장을 눈감아주고, 한국이 ‘북한 악마론’에 동의하면서 군사동맹의 빌미를 준다면 동아시아 평화는 매우 어렵게 된다.
'동아시아가 무엇인가?‘ 하는 규정은 아직까지 모호한 것 같다. 서구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된 동아시아(중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가 있는가 하면,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며 식민지배와 수탈의 도구로서 형성된 동아시아도 있다. 현재 중국의 경우에는 동아시아가 아닌 ‘아시아’의 개념이 더 강하고, 일본은 미국을 제외하곤 외교관계가 없을 만큼 동아시아에서는 고립된 존재이다.
현재 해결의 키워드가 동아시아의 연대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일본의 우경화를 막는 것, 일본의 재무장이 군국주의 부활까지 경계해야 할 경험이 아시아의 나라들에게는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서승선생의 제안은 과거사 청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일본사회의 자성의 목소리를 강제해내고, 이성적 사고를 깨우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 일본의 반동적인 정치구도를 하루아침에 뒤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일본군 위안부 교과서 문제등에서 부분별로 이루어져온 동아시아 과거청산운동을
민간차원의 '동아시아 진실화해위원회'같은 총체적인 운동으로 승화시켜나가는 일도 생각해봄 직하다」-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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