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춤
★★★★
조정래 / 문학의 문학 / 2010.10
허수아비 춤
(이 책에 대해 사전지식이 거의 없는 나에게는 멋대로 생각할 자유가 있다 ㅋ)
왜 제목이 허수아비 춤일까?
“ 알맹이는 어쩐지 알 수 없는 것들이 껍데기만 남아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내 대립의 연속, 갈등의 연속이었다.
마치 일부로 극단으로 몰아치듯이
굴지의 대기업과 소수로 존재하는 시민단체와의 대립이고
대기업 운영을 책임지는 3인과 회장과의 대립이며
상위 1% 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과 생각의 대립이었다.
문화개척센터의 3인은 한국사회의 엘리트이고 승자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경쟁하고 시기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마지막의 승자로 살아남기 위해 당장은 머리 숙이고 속으로는 욕한다. ‘당장 아니꼽고 더럽더라도 이번만 지나면 내가 승자가 되니 참겠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진정 맛보고 싶어하는 자기 우월감과 승자의 기분은 회장이 인정해준 순간 아주 잠깐일 뿐이다. 물론 자기 인격 따위는 눈감으며 행동해 온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이들의 일상을 남성특유의 성적 본능, 경쟁 심리와 정복력에 따른 것이라고 묘사한다. (등장인물 중 전인욱의 삶에는 이런 묘사가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본능적 문제로 취급해 누구나 이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가? 라고 이해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동물의 모습으로 다가 왔다.
자본주의가, 기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짐승사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느끼게 하더라.
그들의 사회는 약육강식의 사회였다. 매우 야만적이었다. 그들 사이에 살아남기 위해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 머리를 숙이고 뒤돌아서 다른 이를 폭력적으로 누른다.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서 다른 가치는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에는 이성적 사고도 상식적 행동도 없었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고매한 품격의 인생 따위는 볼 수 없었다.
한국사회는 상위 몇퍼센트 안에 든 사람들을 시기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강한데 허수아비 춤을 읽고 나면 오히려 안쓰럽고 측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재벌과 비리, 권력과 돈을 배경으로 한 부도덕한 행동들은 무한 이기주의자들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는 어쩌면 표면에 불과했던 것이다.
짐승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며 이는 노동자 뿐 만이 아니라 모두가 희생자이고 피해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지 검사이기를 포기하고 시민단체 대표까지 하게 되는 전인욱과 양심적 교수 허민이 가지고 있는 양심과 도덕이라는 것이 매우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들은 항상 서로 신뢰하고 아끼며 의기투합을 한다. (이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준다.)
다만 물질만능 사회에서 도덕과 양심으로만 살아가자니 초라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초라함을 느끼는 것은 외부에서 보는 시선일 뿐이지 소설 속 당사자들은 오히려 반대였다.
거성그룹으로 옮겨가는 강기준의 모습에서, 시민단체의 도덕성까지 훼손하려하는 윤성훈의 모습에서 야만적 자본주의가 확산해 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내면은 오히려 자신의 초라함과 불안함을 이기고자 하는 공격적 행동일 뿐이다.
전인욱과 허민의 마지막 행동은 나오지 않는다. 만만하지 않은 싸움을 준비하자고 결의를 다질 뿐이다.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전인욱과 허민같은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 볼 것인가? 가 아닐까.
그래서 허수아비 춤은 그렇게 마친 것이리라.
덧. 이 작품이 나온 순간 ‘문학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새삼 뒤늦은 것만 같은 담론을 제기했다. 읽어보면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말이 소설이지 이건 현실이다. ‘삼성을 생각한다’ 를 절로 생각나게 하는
그래서인지 작가의 목소리가 깊이 묻어나는 긴 선동문을 본 느낌이기도 하다.
씁쓸하기도 하면서 가슴이 뛰기도 한 그런 느낌으로 책을 덮었다.
'문화 ;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익단체에도 프로정신이 필요하다! _기업전략에서 발견한 공익마케팅 법칙<로빈후드 마케팅> (0) | 2011.02.04 |
---|---|
"청춘"이라고 규정내려야 할 요구도 이유도 즐거움도 없는 이들의 자서전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0) | 2011.01.24 |
아시아 리얼리즘_ 리얼리즘에는 정신이 담겨있다. (1) | 2010.10.01 |
지금 이 순간의 역사_죽은 그들이 역사가 되어 산 사람의 가슴에 묻혀있다. (0) | 2010.09.25 |
알랭 드 보통_ <불안> (0) | 2010.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