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접경지역 답사여행 4박 5일
대련-단동-백두산-연길-도문-훈춘 2012.9.19~23 (4박 5일)
(왼쪽부터) 신압록강대교. 백두산천지. 연길시내. 3국접경지대 훈춘
베이징과 상하이가 아닌 중국의 변방인 북-중접경지역을 가다.
인천에서 대련은 비행기로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중국은 대한민국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한편 중국은 정말 넓고 넓었다. 우리는 여행기간 내내 ‘대륙’이라는 단어를 달고 살았다. 실제로 4박 5일 동안 압록강을 따라 1500km, 총 35시간을 이동하였다.
대련공항에서 만난 가이드와의 첫 대화도 백두산 여행은 ‘엉덩이 여행’이라며 장거리 이동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앞집에 잠깐 간다고 말하면 3시간이라면서 여행기간 내내 우리를 달래곤 했다. 덕분에 우리는 이동시간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되었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대련은 요녕성안에 있는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요녕성은 남한보다 크고, 앞으로 우리가 4박 5일 동안 거쳐 가게 될 요녕성(라오닝성), 길림성(지린성), 흑룡강성(헤이룽장성)을 합치면 한반도의 2배가 넘는 면적이 된다. 물론 중국으로서는 아직 한참 개발해야 할 변방지역일 뿐이다.
중국의 대표 관광도시인 베이징(북경)과 상하이(상해)가 아닌 변방을 선택한 이유는 중국이 아닌 북한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4년 넘게 북한과 교류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북-중경협이 활발한 중국 동북지방을 답사여행지로 삼았다.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이 아니어서인지,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그리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선택이 기대한 것보다 더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이번 답사여행이 정확히 그러한 경우였다.
(왼쪽부터) 러일전쟁 최대격전진 203고지/ 항미원조기념관/ 여순감옥/ 윤동주시인의 대성중학교 / 항일 독립운동 기록들
20세기 동아시아는 전쟁의 시대, 그리고 현재보다 강력한 과거의 기록들
우리는 첫 번째 장소인 러일전쟁 203고지에 도착해서도 왜 이곳을 굳이 왔는지, 왜 여기가 시작점인지 잘 알지 못하는 어수룩함을 보였다. 그러나 여순감옥, 항미원조(抗米援朝)기념관, 압록강 단교를 돌아보면서 20세기 동아시아는 진정 전쟁의 시대였으며 그 역사를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던 조선과 중국이 단결하여 싸우던 항일투쟁, 그리고 작은 한반도를 통해 자기전선을 지키겠다고 달려든 미국과 중국, 그리고 지속된 전선동맹과 냉전체제
기록된 역사들은 다 나름의 정당성을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말하는 동아시아의 평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는 여정이었다. 가끔은 현재보다 과거의 기록이 더 강력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바라지만 20세기의 전쟁의 역사가 묻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렬하고, 날카롭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 누구의 역사도 무시되지 않고, 무뎌지지 않으면서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방법은 어디 있을까? 21세기 동아시아에 평화는 어떤 모습으로 언제쯤 올까?
(왼쪽부터) 압록강 단교, 뒤 배경은 신압록강대교 / 일과보(한발만 나가면 북한) / 평양금강산관광 홍보가 있는 버스정류장/ 남한사람은 못가는 전망대, 다리의 붉은 색은 중국 회색은 북한 지역이다.
국경의 길목에서 거부당한 남한 사람
분단,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닌 ‘한심스러운 현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본 국경이라는 것에는 국가와 국가를 잇는 길목이 있었다. 그런데 그 국경이 번번이 나만 거부했다. 가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쳐다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인들은 북한까지 연결된 신압록강 대교를 걸었고, 나는 6.25때 미국이 끊어놓은 압록강 다리 위를 걸었다. 두만강에 도착해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전망대에 올라가고 북-중 국경선이 그려진 다리도 걸어 다녔지만, 나는 다리 밑 뗏목을 타고선 수풀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북한을 쳐다봐야 했다. 우리는 훈춘에 있는 북-중-러 공동 세관문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륙, 중국에 서있으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고립감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서러운 것이었다. 아름다운 백두산 천지를 중국땅에서 볼때는 그 감정이 극에 달했다.
국경에서 만큼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남한 사람이었다.(사전적 의미는 같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다른 의미로 쓰이곤 하니까) 남한 사람에게 가장 개방적일수도 있었을 북한은 남한사람에게 가장 폐쇄적인 곳이었다.
분단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닌 ‘한심스러운 현실’로 느껴졌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나에게 북-중접경지역은 그만큼 잔인한 공간이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한 이들은 내가 회원으로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이었는데, 모두가 분단 현실에 대해 답답하고 씁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은 그 자리에 함께 있어서 우리 민족의 출구에 대한 열망을 나눌 수 있었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한탄은 무기력과 함께 커졌을 것이다.
(왼쪽부터) 북중러 국경이 내려다보이는 훈춘, 러시아 언어를 동시표기하고 있다 / 단동역 앞 모택동 동상 뒤로 보이는 공사현장/ 중국에서 상업활동하는 북한 식당/ 장백산이라 불리는 백두산, 최근 대대적인 관광공사를 했다.
압록강- 두만강을 따라 건설과 상업으로 흥성거리는 도시들
이쪽 지역은 여행자의 눈으로 보자면 불편한 도로사정, 건설작업으로 어수선한 거리들, 상업과 서비스업이 과도하게 집중된 듯한 모습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행 중간 중간 ‘변방에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중국정부는 동북3성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북-중무역의 70%가 이뤄지고 있는 단동・압록강에 이어 위화도・황금평 경제특구 개발, 북-중-러 3국이 만나는 훈춘을 중심으로 창춘-지린-투먼 개발계획, 그리고 훈춘-나선특구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변방이 동아시아 물류허브로, 북한에게는 개발과 경제성장의 핵심 기지가 될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희망이라고 불릴만한 미래가 곳곳에 숨겨있는 지역’이었다. 현장에 와보니, 한국을 벗어나니 보이는 미래와 희망이기도 했다. 이런 미래를 두고 남북이 대결상태로 있다는 것이 시대에 뒤쳐진 낡은 태도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10년 뒤 이 지역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남북관계는 얼마나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동아시아의 꿈인 물류허브는? 평화는 온전히 만들어진 상태일까?
제 3국에 선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깨우쳐주고 있었다. 문득 경계인의 태도를 존중하지 않는, 혹은 불법적인 것으로 다스리려하는 한국의 문화가 너무 낯설었다.
답사여행에서 돌아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그 자리에서 느꼈던 감정이야 무뎌질수 있다.
그러나 4박5일 동안 일관되게 말하던 그 메시지를 잊지 않고자 기록해 본다.
1,2년 뒤 이 글을 다시 읽을때 어쩌면 현실보다 강력한 기록으로 될수도 있으니
written by 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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