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한복판에 당당히 세워진 독립문, 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가려고 할때 가장 먼저 보인다
독립문은 일제가 아니라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
원래 이 자리에는 영은문(청나라 황제의 은혜를 맞이한다)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의 독립관 자리는 모화관(청나라를 흠모한다)이 있었다. 독립문은 은 영은문을 헐어버리고 세운 것이다. 독립문 앞에는 큰 두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은문 기둥이다.
일본은 영은문을 기둥만 남겨두고 무너뜨렸고, 그 자리에 독립협회의 주도해서 1897년 11월, 독립문을 세웠다. (한일강제병합은 1910년에 이루어졌다) 이 때는 청나라가 청일전쟁(1894)에서 패한뒤 몰락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중국 사신이 오는 홍제동쪽에서 보면 한자로, 서대문 쪽에서 보면 한글로 '독립문'이라는 글자가 씌여 있다.
독립문 글씨를 두고 누가 썼는가라는 논란이 있다. 필체가 이완용의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망명한 김가진 선생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만해도 독립문은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고, 독립협회는 개혁관료들 중심의 최초의 시민단체였다. 독립협회는 서재필을 중심으로 이상재·이승만·윤치호 등이 적극 참여하였으며, 협회 발족 당시에는 이완용·안경수 등 정부 요인들도 다수 참가하였다. 이 그룹은 대체로 친러에서 친일로 그리고 친미로 옮겨갔다.
당시 청나라로부터 독립한다는 의미는 일본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였다.
독립문의 원래 위치는 고가도로 밑이었다. 지금은70m 떨어져 있지만..
이 고가도로는 사직터널과 금화터널을 잇는 도로인데 준공된것이 1979년 , 그러니까 박정희가 죽던 해였다.
1975년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지는 등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박정흐는 최아의 사ㅐ에 대비할 필요를 느꼈고 처오아대에서 김포공항까지 최단시간에 달릴수 있는 길을 놓고자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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