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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책장

의자놀이(공지영)_ 평범한 노동자에서 가장 특별한 노동자들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우리가 받은 것들

의자놀이(공지영)_ 평범한 노동자에서 가장 특별한 노동자들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우리가 받은 것들
 

 

 

분명히 책을 읽었는데 머리가 백지다. 딴 짓 한번 안하고 차근차근 꼼꼼하게 읽었는데 생각이 뒤죽박죽이다. 누가 내 등을 ‘찰싹’하고 세게 때려주면 좋겠다. 책을 읽고 뭐라도 토해내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그 덕분에 나는 이 글을 천천히 쓰고 있다. 마치 종이에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듯이

의자놀이는 내가 평범한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종종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그 한국 사람의 모습 말이다.

 

나는 평범한 한국 사람이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는 게 달갑지 않다.

인간극장, 병원24시, 소년소녀가장 후원방송……. 사람들이 힘겹게, 지지리 궁상떨며 사는 모습을 보는 게 싫다. 힘들다.

불과 200여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의자놀이>를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 책장에 꽂아두고 2주 넘게 쳐다만 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좀 잠잠해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야 한단 말인가?’ 나는 이미 테이저탄이 볼에 박힌 노동자의 사진을 사진으로 보면서, 지붕위에서 전력질주하며 달려온 전경이 노동자를 집단 구타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 달이 차기 전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눈물을 쏟을 만큼 쏟았다. 그런데 또 이 책을 펼쳐야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나는 평범한 한국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굳이 이 책을 펴지 않아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기사도 꼬박꼬박 챙겨 읽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들어서 익숙한 단어'를 '내용을 안다'고 생각한다. 자주 들으면 많이 아는 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겹다고 한다. ‘대충 아는 내용이야’ ‘뭐 그리 큰일도 아니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아~ 그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말하는 듯하는 태도가 불편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알았다. 나는 대한문 앞을 지나다니면서 농성장 가까이에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쌩~하고 지나가지도 못했다.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잘 아는 것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태도 말이다. 심지어 아직 희망식당 한번 가지 못했다.

쌍용자동차가 헐값에 매각됐다는 유인물을 직접 받기도 했지만 그게 중국인지 인도인지, 파업 이후 자살한 사람이 22명이나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그들에게는 유서 한 장이 없는지, 쌍용자동차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진압인건 알았지만 그 상황을 지휘한 자가 최루액을 향수라고 생각할 만큼 미친놈이었는지, 파업 때문에 자살한 아내의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사측이 틀었던 노래가 ‘오 필승 코리아’였는지 몰랐다.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참나 나는 뭐 잘났다고 의자놀이 읽는 것 하나를 괴로워했나? 뭐 안다고,

그 상황을 겪은 사람도 있고,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도 있으며, 지금도 괴로워하는 쌍차노동자와 가족의 상처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글로 쓴 사람도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평범한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설움이 분노가 되고 용기가 되고 행동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맘에 들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를 전두환-노태우처럼 법정에 반드시 세워 죄를 묻겠다고 생각한건 처음이다. 지금 같아선 이전 세대들이 벌인 ‘전노 학살차 처벌’ 투쟁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할 것 같다.

의자놀이를 가슴 아프게 읽어도 쌍차 노동자들의 설움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게 그들은 여전히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분노마저 잃기 전에 내가 더 분노해주고 싶다. ‘함께 우리’라고 말해야할 것 같은 책임감이 생긴다. 우선은 사무실 사람들과 희망식당에 가고, 의자놀이 10권을 가족・친구들에게 선물이라도 하면서 말해야겠지만.

“사람이 스물두 명 죽었다. 만일 60만 명이 산다는 서울 노원구에서 똑같은 원인으로 스물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중략)..

그런데 불과 3년도 안된 시간동안 2,646명 중에서 22명의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희생되었다. 모두 같은 울타리에서 같은 원인으로 쫓겨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쌍용자동차의 죽음은 특히 보수 언론에서는 아예 언급되지도 않는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일까?”

 

마지막으로 공지영 작가가 이 글을 쓰기까지의 망설임과 괴로움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좋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강하게 있어 독자인 나는 쌍차노동자를 100%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해하는척하는 거만함을 줄일 수 있었고, 내 수준에서 낼 수 있는 온전한 나의 목소리에 대해 진지하게 점검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여부에 상관없이 부당함에 대해 끊임없이 호소해온 기자들, 그리고 평범한 노동자에서 가장 특별한 노동자들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감사하다.

written by 영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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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

가슴 한켠을 무겁게 만들면서도 '그래도 잘 해결되겠지, 국민들이 예전의 국민들은 아니니까' 하고 생각해왔다.

그러면서 나는 애써 밝게 생각해왔고, 작은 돈이나마 후원계좌에 후원하는 것으로 자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의자놀이"책을 읽으며 내가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 과연 알고는 있었는가 하는 생각과, 그들의 마음을 단 2%라도 이해하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세상은 그냥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진리.

그리고 분노는 살아가는 필수에너지 라는 진리.

세상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지켜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진리. 를 배우고, 가슴속에 새기며 책을 덮었다.


함께 살자, 제발 좀 함께 살자. 나한테 먼저 필요한 말이다.

공지영씨를 비롯 애쓰시는 모든분들께 감사드리며,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누구라도 책을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written by 치열과 젊음

제주 해녀를 감탄스럽게 바라보던 외국인이 물었다.

"만일 장비가 있다면 엄청나게 많은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겠군요. 예를 들면 스킨스쿠버 장비 같은."

해녀가 대답했다. "그렇죠. 그런 게 있으면 지금보다 100배는 더 많이 딸수 있겠죠."

외국인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왜 그걸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해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100명분을 다 따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하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