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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책장

<평양에 두고온 수술가방>세상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그가 왜 평양에 가게 된 걸까_오인동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_ 오인동 (창비 2010.9)

세계적 인공관절수술 전문가 오인동 평양으로 수술여행을 떠나다.

세상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그가 왜 평양에 가게 된 걸까

‘닥터 오’로 불리는 저자 오인동은 정형외과 의사로 하버드병원의 교수진이자 인공관절기 수술법 개발자이다. 그가 고안한 고관절기는 발명특허를 받으며 학술연구상도 여러차례 받았다.

그런 그가 재미한인의사회 방북대표단에 참여하게 된다. 북녘에 대한 호기심과 어려움에 처한 북녘의료계를 돕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1992년 시작한 평양방문은 1998년 2009년 2010년으로 이어진다.

약 10년에 걸친 4번의 평양방문, 그 사이 ‘닥터 오’는 변했다.

제3국에 사는 재미동포로서 분단현실을 공정하게 보게 되고, 민족사와 분단대결에 마음아파하면서 통일운동에도 나서게 된다.

평양도 변했다.

낯설기만 한 외부인에게 자신들의 의료사정에 관해 단 하나도 오픈하지 않던 북이 이제는 닥터 오에게 1년에 두 번씩 와달라고 한다. 대외교류도 늘어 협력사업에도 능숙해진다.

‘둘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북은 정말이지 어떤 사회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읽는 이에게는 매우 흥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북을 바라보는 ‘닥터 오’의 균형잡힌 시선

‘닥터 오’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나간다. 몇 번의 방북 경험과 분단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 속에서 정립된 만큼 매우 현실적이고 균형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가진 자의 오만이 아니라 겸양의 덕으로 북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도와주면 되는 게 아닐까? 그것이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정립하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첫 번째 방문에서 북이 의료기술의 현실을 공개하지 않아 답답함에 결국 강연중 화를 낸 것이다.

「 대체 이 나라에서는 어떤 수술을 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하고 계신 수술들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그것에 맞게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조차 짐작 할 수 없습니다” 내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의학을 얘기하러 온 사람이지, 여러분들의 의술을 훔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미국 CIA지시를 받고 온 사람도, 남한의 안기부 끄나풀로 온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럴 수 가 있습니까?!」

강연 후 그는 북녘 동무로부터 “공화국을 돕겠다고 방문한 사람들을 여럿 보았지만 대부분 은 큰소리만 치고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서 오히려 자신이 움츠러든다.

‘닥터 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궁금한 게 많다.

‘북은 상대에게 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왜 사진찍기를 거부할까?’에서부터 ‘금수산기념궁전앞에서 흘리는 인민들의 눈물은 자발적인 것인가?’까지.

그러나 굳이 보여주기 싫어하는 부분을 꼬집어 먼저 말하지는 않는다.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면 자연히 알게 될 텐데 괜히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는 북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평양에 갈 때는 한가득 무거운 수술가방이 돌아올 때는 번번이 빈손이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남북분단이라는 안타까운 현실

북에 대한 균형잡힌 시선을 넌지시 제시하는 반면, 분단이데올로기로 인해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제기한다.

「북에서는 6·25전쟁의 적을 미국이라 생각하고 ‘원쑤미제’라고 강조하는 반면 남한 국민들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 남한정권을 미국의 하수인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는 남한이 북한을 주된 적대국으로 삼고 비난하는 태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방북했을 당시에 만난 북녘대학생들은 우리에게 미국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고, ‘공화국 품안에서 사는’ 자신들에 비해 안쓰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퍼주기논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정말 퍼주기는 한 걸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105층의 류경호텔공사를 맡은 건 어느 외국회사란다. 전 세계를 누비며 초고층빌딩을 도맡아 건설하고 있는 남한의 기업들이 북한 노동자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북녘에도 손전화기 사용이 늘고 있는데 이 또한 이집트 회사인 오라스컴이 맡고 있다니 휴대전화 왕국이라는 남녘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북한에 투자한 오라스컴은 3년의 투자규모가 개성공단 투자비용을 뛰어넘는다고 하니 그동안 개성공단 사업을 두고 ‘퍼주기’라 비난해 온 남녘사람들이 속으로 뜨끔하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닥터 오’의 2009년 2010년의 방북은 북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평양의 건물, 전력문제, 패션에서 손전화까지 눈에 보이는 평양의 모든 것들이 달라져있었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의료기술교류를 대하는, 대외협력파트너를 대하는 태도 역시 눈에 띄게 달라졌다.

사실 남북관계가 단절된 것과 상관없이 북한은 상당히 변화·발전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한이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북’이 아니며 더 이상 이러한 주장은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의 반증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뛰어다니는 젊은이들 놀이기구마다 길게 늘어서있는 줄 모드가 생기발랄하고 즐거워보였다. 휴가를 나왔는지 앳돼 보이는 인민군 병사들도 놀이기구를 타기에 바빴다. 진정 여기가 북한인가? 금방 붕괴된다고 하는, 북한이 맞는가? 아니면 내가 다른나라에 온 것인가? 북한이 내일모레 망한다고 떠들어대는 지도자나 내외언론인들은 내가 못 보는 무슨 다른 것을 보고 그런 얘기들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북한에 몇 번이나 와봤을까? 아니 와 본적은 있을까?」

 

‘통일보다 나은 분단은 없다’는 재미동포의 신념

‘통일보다 나은 분단은 없다’는 그의 신념은 누구도 분단의 멍에를 내려놓지 않고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같은 겨레로서 동포애와 의사라는 직업소명을 가지고 의료교류와 통일운동에 더욱 매진하겠지

얼마 전 북중접경지역에서 느낀 분단현실의 답답함과 남북대결현실은 한심하게까지 느껴졌다.

부정하려해도 달아날 길 없는 우리의 숙제, 분단과 통일

분단사회 구성원으로서 살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제3국에서 느꼈다. ‘닥터 오’도 처음에는 이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단의 멍에’를 지는 길을 선택했다.

백낙청선생이 말한 2013년체제, ‘남북이 서로 돕고 협력하는 시대’를 준비하는 시민의 태도와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written by 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