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_공선옥 장편소설
오랜만에 소설을 잡았다.
가슴이 저려온다고 할때 이런 표현인가 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울먹거림을 목에서부터 힘주어 누를 뿐이다.
....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지나지 않아 한 선배가 어른스러운 척하며 말했다.
"청춘은 시퍼렇게 멍들어서 청춘인거야"
"뻥!"
나는 선배가 아무거나 막 갖다 붙인다고 생각했다.
영혼은 자유로운데 현실이 안받쳐 준다고 투덜댔지만
사실 나의 영혼을 어디다 둘지 몰랐다.
그래서 적당히 익숙하고 적당히 양심적인 곳에 나를 두었다.
청춘이 시퍼렇고 어쩌고 할 시간은 별로 갖지 않았다.
..
해금이 정선이 수경이 승희 승규 진만이 만영이가 나와 다른 것은
자신들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는 자기 영혼을
정말 시.퍼.렇.게 멍들도록 이리 갖다대고 저리 갖다댔다는 것이다.
사회에 좀더 빨리 내던져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가 그들을 내몰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피하지 않았고 격정적이지만 가슴아프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대들의 20살이 나의 20살보다 어른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
요즘 후배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영혼이 외롭다'고 한다.
정말이지 그들의 영혼은 불안하다 못해 외로워 보인다.
던지고 싶어도 던질 곳이 없다.
어디다 던져야 할지 모르니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러다 결국 한 번의 실수가 실패로 될까 하는 두려움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던지고자 하는 시기를 최대한 미룬다.
나도 '시퍼렇게 멍드는게 청춘인데 뭘 겁내니~, 한번 던져봐!' 라고 쿨하게 말할수 있는 선배이고 싶다.
나도 그런 경험은 별로 가져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후배들에게는 내가 꽤나 다채로운 (?) 대학생활을 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나때는~' 이라는 꼰대같은 말을 쓰나보다.
.....
참, 해금이는 우리 엄마다.
광주에서 태어나 20,21살에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다.
양재학원에서 봉제를 배워 서울에 와서 봉제공장의 시다로 일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도 시퍼렇게 청춘을 보냈다.
21살에 결혼해 아직 막내티를 못 벗은, 놀기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벙어리 냉가슴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공선옥의 소설이 참 마음에 든다.
특별한 누구가 아닌, 특정 상황이 아닌
걸을 때마다 발에 채이는 잔돌멩이 같은,
혹은 매일 그자리에 피어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들꽃같은
그런 여성들을
가슴깊이 담을 수 있도록 아름답게 그리니 ...
정말 징글징글 정도로 평범한 우리엄마가
소설의 주인공일 수 있으니 말이다.
....
[ 그와 나 사이에 가로놓은 안타까운 거리만큼, 안타까운 시간이 흘러 갈 것이다.
이환과 보낸 세상물정 모르던 시간들은, '내 가슴에 은하수 흐르던 시절'들은 아스라이 멀어졌다.
그 시절은 내게도 오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환에게도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시절들이 그렇듯, 목련이 지듯, 모란이 지듯, 속절없이 지나가고 전혀 다른 새로운 시절들이 밀려오게 되어있다. ] _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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