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김민웅의 인문정치2 _ 인간을 위한 정치
2016.5 한길사
인간을 위한 정치
제목을 읽는 순간,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흘려보냈다. 다시 정신차리고 ‘대한민국이 진정 할 수 있을까? 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를 되묻는 순간, 머리로는 ‘행복하겠다’ 였지만, 몸에서는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과 답답함에 반응하고 있었다.
인간을 위한 정치가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게 하는 사건들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는 국민들의 건강권과 후대의 생명에 대한 중대한 문제제기였다. 2009년 용산참사는 생존권에 대한 절규를 폭력으로 진압한 사건이었다. 아까운 생명들이 불타 숨졌다. 2010년 쌍용차 사태에 대한 폭력진압도 다르지 않았다. 5년이 지난 2014년에는 쌍용차 해고자 가운데 25번째 자살자가 생겼다. 국민의 생존권,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내지 않는 권력의 무책임과 횡포가 저지른 타살이다”_37p 생명의 정치와 국가의 책임
이런 일들은 책 한권을 꽉 채워도 모자를 지경이다. 구의역 청년의 죽음은 ‘사건’이라고 부르기에는 우리 모두가 너무 서럽다. 평당 가격이 타워펠리스보다 비싼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의 삶은 다른가? 자업자득일뿐일까? 그렇다면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느끼는 생명위협은 어떠한가. 목함지뢰사건은 군인들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대책은 온데간데없이 또 다른 이의 생명을 담보로 한 보복만 나부꼈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이지경까지 왔는가,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대한민국 정치에 인간의 가치가 설 자리는 없었다. 저자와 함께 한국정치를 진단하다 보면 분명해진다.
"민주주의의 실종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국민이 무엇을 고통스러워하는지를 토로하고 그에 대해 듣고 논의할 수 있는 정치의 장이 펼쳐져 있지 않다. ..(중략).. 그런데 정치권력이 문제제기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상황에서 논하는 민생이란, 그 권력이 시혜적으로 베푸는 정책에 만족하는 것 외에 다른 말은 하지 말라는 식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국민대중은 거대자본이 가져가고 남은 것 가운데서 개평이나 나눠갖는 남루한 신세가 되고 말뿐이다"_18p '민생정치'의 허구
“한국정치의 현실을 탐구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또 하나의 대목은 '자본이 지휘하는 정치'라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한국정치의 척추를 이루는 사안이다. 1999년 IMF관리체제 이후 한국이 혹독하게 경험한 것은 자본이 국가를 통솔하고 국가의 기능을 동원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노동배제적으로 실현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양극화의 기초가 되는 부자 감세, 전임노조 임금지급 제한 등으로 상징되는 노조에 대한 정책적 압박, 용산참사에서 목격했듯이 재개발 지역민들에 대한 불공정 정책, 4대강 사업에 따른 사회복지 예산 축소, 주요 공기업에 대한 거대자본 지배구조 만들기는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가 무엇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_19p 선거는 '자본의 사제'를 뽑는 제의인가
온 몸을 내던져 삶의 문제를 절박하게 이야기한 국민들에게 정치권력은 살인으로 답했다. 인간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사회, 용산참사가 그랬고 쌍용자동차 파업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가 그랬다. 밀양원전이 그랬고 제주강정 그랬다. 그리고 이들은 백남기 어르신 영정 앞에서 만났다. “내가 바로 백남기다”는 구호는 이미 백남기를 예고하는 수많은 목숨들이 도처에 있다는 반증이었고, 지금의 정치권력을 거부하고 광장의 정치를 만들어가겠다는 역사적 선언이었다. 인간을 위한 정치의 싹은 그들의 절박한 투쟁속에서 움트고 있었다.
인간을 위한 정치의 기본조건_분단국가의 평화 만들기
한국정치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값싸게 취급해 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로 출발했고, 분단이 불러온 상처와 모순이 구조화 되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역으로 "인간의 고통에 민감하고, 생명이 갈망하는 바에 최우선의 관심을 기울이는 정치_생명의 정치”를 만들고자 한다면 한반도 평화와 분단체제 극복은 근본적이면서도 우선적인 과제로 된다.
저자가 이 책의 100페이지(4장 전쟁과 평화의 문법)를 한반도 평화문제에 할애하며 “평화에 무관심한 사회는 전쟁을 준비하는 세력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집단이 된다”고 경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우선 한반도 평화의 핵심키워드인 북한핵에 대해 북한의 선핵폐기가 아닌 미국의 적대적 정책의 변화로 해결된다는 근거들을 제시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사회적 성찰, 이성적 검토를 요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아가 제국주의와 군사주의로 성장한 전쟁국가 미국이 스스로 정책을 변화하기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운명을 강대국에게 맡겨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오늘의 동북아시아가 겪고 있는 긴장과 진통은 본질적으로 미국이 이 지역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을 담당할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중략) 미국의 패권적 일방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 지역에 평화와 공정한 국제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은 출발점 자체가 잘못될 수밖에 없다.”_302p 미국, 제국의 성립사와 우리
결국 한반도의 역할이 강조되는데, 저자가 한반도 평화운동의 성격을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 한반도 평화를 불러오는 일이 동북아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성격을 띠는 방대하고도 거창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평화운동은 (1)아메리카 제국의 독점대자본의 지배를 극복하는 반신자유주의 운동 (2)전쟁정책을 앞세운 군사주의노선에 대한 반전운동 (3)민족내부의 결속을 저해하고 대결을 조장하는 내외의 적대정책을 청산할 민족화해와 공조체제의 확대 (4)국제적 시민연대의 확산 등을 축으로 하여 전개해나가야 한다. 이는 한마디로 폭력을 수반하는 강제적 통합과정을 속성으로 하는 ‘자본의 제국’에서 이탈하여, 인류 공동의 생존이 확보되는 새로운 평화체제로 전환을 기획하는 일이다.” _255p 평화의 논리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 -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 정치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가. 저자는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이 인간을 위한 정치의 토양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이 가장 절실하다. ...(중략).. 정치는 망각을 밥으로 삼아 기만을 일삼는다. 망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진실을 왜곡되게 재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권력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주장만이 합법이고, 그밖에는 불법이 되는 것이다”_24p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
권력이 사회적 논쟁과 성찰을 차단시키고 자신들이 내린 답만 기억하도록 한 대표적인 몇가지 사건_ 국가 정보기관이 민주주의 기본 작동방식을 교란시키고 사법처리 대상이 되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대통령이 면죄부를 준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 낙인찍히면 조국의 문제를 끌어안고 평생 살아온 연구자의 업적도 고민도 모두 질타와 매도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보여준 송두율교수 거물간첩사건, 민주주의 해체와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권력의 언론장악의 전 과정을 보여준 YTN사태와 언론노조의 투쟁, 북한의 주장과 같은 것도 아니고 비슷하다는 이유로 죄가 되고, 무죄로 결정된 사항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내려 헌법정신을 붕괴시켜버린 통합진보당 해산결정_을 불러들이며 망각과의 싸움(이 책 2장)을 전개한다.
지금 우리는 광장에서 사회적 연대를 실현해야 할때.
이 책을 관통하는 '인간을 위하는 정치' 만큼이나 강조되고 있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다. 소통과 연대가 마비되어 전체주의와 다를바 없는 민주주의를 사는 우리가 사람이 사람답게 함께 살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책무를 지닌 정치로 바꿔내려고 한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크다. 저자의 말대로 정치는 망각을 밥으로 삼아 기만을 일삼고, 민주주의를 저지하는 권력과 자본은 우리에게 인간됨을 포기하라고 강요하지 않는가. 그러나 벽을 허무는 일은 이미 시작되었고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광장에서 희망을 보았고, 나에게 희망을 준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으므로. 우리의 미래는 소중하니까.
“앙심과 윤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없게 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기대할 수 없다. 이들이 만들어놓은 감옥을 도처에서 부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치의 본질이다.”_318p 권력과 자본 그리고 민주주의
[책 추천]
단연 정치의 시대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의 대결(?)을 보자면 고구마를 100개쯤 먹은 답답함을 느낀다. 나는 장미대선에서 대선주자들이 국민다수가 고통받아온 지난 기간을 어떻게 평가하고 성찰하는가를 밝히고 논쟁하기를 기대했다.
적어도 문재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계승과 혁신차원에서 평가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했다.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아니라고 하는 안철수는 자신이 진단하는 시대적 요구를 밝히고 그를 실현하기 위한 자기능력을 국민들 앞에서 검증해내야 했다. 나아가 ‘정치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국가권력이 지향해야 할 정치는 무엇인가?’의 논쟁들이 치열하게 전개되기를 바랐다. 그래야 야당과 여당을 넘는, 정파와 이념을 넘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찾아낼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현실은 안철수는 말바꾸며 표만 쫓는 철새가 되어버렸고 도덕성 검증에서부터 새누리당과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은 안철수 이길 생각만 하니 네거티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2012년 대선과 똑같은 색깔론이란 덫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다. 색깔론을 이기지 못하는데 적폐청산은 할 수 있을까. 적페청산 하겠다고 할때마다 빨갱이라고 할텐데.
대선에 담기지 못한 사회적 논쟁은 고스란히 촛불시민들의 다음과제가 될 것이다. 누구도 돌려세울 수 없는, 인간을 위한 정치를 위한 최소한의 합의를 찾아내기 위한 전사회적 학습과 토론 그리고 현실에 옮기는 실천력까지.
그 논쟁을 시작하기에 적합한 책이 있어 추천한다. 김민웅교수의 인간을 위한 정치
우선 “생명의 정치가 새정치”라는 저자의 규정은 대한민국의 모순과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을 싼값으로 취급하던 정치권력이 삶에 대한 발언권조차 봉쇄해버린 지난날을 재조명하는 노력은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의 주제들이 촛불시민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토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으로 인문학이 정치를 만날 때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느끼게 해준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인문학적 사고의 흐름, 질문 방식을 약간이나마 배울 수 있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김민웅 교수는 정치를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데 단연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학계언어가 아닌 대중언어를 쓴다는 큰 강점을 가진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김민웅 교수만 쓸수 있다고 본다.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인문학적 사고와 표현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더더욱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최고의 시간낭비, 최악의 수준이라는 대선주자들의 토론에 상처입었다면 이 책을 읽으며 답답한 가슴 뻥 뚫고 심기일전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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