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 책장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_"진보의 힘은 '순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섞임'에서 나온다."

국가란 무엇인가 _ 유시민 (211. 돌베게)

 

 

2008년 용산참사는 충격과 공포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4년이 지난 지금, 국가폭력에 대한 공포, 정치에 대한 분노, 사회정의에 대한 갈망의 목소리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 책도 그런 목소리의 일부이다. ‘그 상황에서 국가는 어떤 역할을 했어야 하는가?’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국가주의국가론과 자유주의 국가론을 비판 검토하면서, 목적론적 국가론에 기초한 진보적 자유주의 국가론을 제시하고 있다.

전쟁의 피바람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기 때문일까?  국가주의 국가론이 너무 힘이 세다.

이 책은 국가주의 국가론의 목적은 오직 하나라고 말한다. 사회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그리고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시킬 수 있으며 어떤 수단이든 다 쓸 수 있다._p37

이에 따르면 분단사회 대한민국은 국가주의 국가론에 매우 충실한 국가였다.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간단명료했다. 대한민국의 목표는 국가안보, 국시(국민 전체가 지지하는 국가의 이념이나 국정의 근본 방침)는 반공, 주적은 북한, 애국의 기준은 국방의무.

이를 위해 과거 대통령들은 폭력과 살인을 마다하지 않았다. 인혁당 사형사건, 4.19혁명, 5.18광주항쟁, 간첩조작사건, 의문사, 고문사건들……. “국가가 무엇이기에 국민을 죽이는가”라는 반문조차 쉽지 않았던, 참으로 무딘 세월들이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민의 희생을 강요한다.

천안함 사고로 아까운 젊은 목숨 46명을 잃었을 때, 그들은 스스로 원한 것도 아닌데 ‘용사’가 되었다. ‘북한’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만큼 대결과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 다른 청년들을 데리고서, 그들 당사자 혹은 부모는 어떠한 허락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도 불사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을 장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사회기강’을 바로잡는다며 국민들을 사상검열을 하고 낙인을 찍는다. 사회기강을 무너뜨리는 행위에는 노동자의 파업, 중고생・유모차 부대의 촛불집회도, 팟캐스트 진행자와 네티즌의 댓글도 포함될 수 있다. 국가는 이들의 주장을 정확하게 알기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배후세력이 누구인지 알아내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배후세력을 찾아내어 공안기구로 본보기를 보여주어 사회혼란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배후세력은 어차피 대한민국의 주적 북한, 혹은 종북좌파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니까.

분단사회 대한민국은 어쩌면 가장 강력한 국가주의 국가론을 가진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분단이 해체되고 평화통일이 오지 않는 낡은 시대를 이끌어온 국가주의자들의 주장은 여전히 힘을 얻을 것이다.

 

지금은 국가주의자들과 싸우는 시대, 그러나 자유주의자는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

 

강력한 국가주의 속에 피어난 자유주의 국가론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국가는 국민의 대리인, 국민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존재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취향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

국가의 3요소가 ‘국민・국가・주권’이라고 할 때 ‘주권을 누가 가져야 하는가’를 두고 국가주의자들과 논쟁하는 자들이 자유주의자들이었다.

대한민국 자유주의자들의 정부의 가장 큰 매력은 정치에서의 자유였다.

그들은 국가가 ‘합법적’ 국가폭력을 통해 권력을 유지・강화하고 있다는 것, 국정원・기무사・검찰・경찰・보안수사대를 동원해 우리 생활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 우리를 일상적으로 위협하는 존재는 북한만이 아니라 국가권력일수도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인정해주었고 사상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자유주의자들의 정부는 깡통 들고 다니는 정장 입은 신사에 불과했다.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켜 파시즘적 성격은 약화시켰지만 동시에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도 전혀 책임지지 않았다. 시장에게만 모든 권한을 허락했으며 자유를 주었다. 외국투기자본을 한국사회에 정착시켰다. 10대 재벌기업의 독주는 심화되었다. 사회구성원들은 거대한 기계의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했으며 점점 일회용이 되어갔다. 경제주체들은 재테크에 넋이 나갔고, 노동자들은 생산자로서의 자부심은 사라지고 소비자로서의 자존심은 바닥을 쳤다.

국민들은 자신들을 내버려둔 자유주의 정부에게 분노했다. 자유주의는 진보주의와 같은 진취성도 없고 국가주의와 같은 한결같은 모습도 없었다. 국민은 자유주의자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념과잉인 국가주의자들이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정체성 불분명한 자유주의자들이 대표주자로 떠오르기에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국가주의도, 자유주의자도 아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국가는 누가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국민들이 원하는 국가의 모습은 정녕 무엇인가? 국민들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진짜 진보를 찾아 다시 헤매게 되었다.

 

진보에게 새로운 진취적인 국가론이 필요하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의 외침

유시민은 진취적 국가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보정치에도 그 나름의 국가론이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국가론에 비판이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진보정치를 하려면 정치 그 자체를 의미 있는 활동으로 인정하는 진취적인 국가론이 필요하다._p 200

유시민은 진보를 찾아 헤매는 국민들을 만족시킬만한 국가의 모습을 진보적 자유주의로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렇다.

자유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복지 안전 평등 평화 환경 등 헌법이 규정한 사회의 최고 목표 또는 최고 가치는 모두 평등한 지위를 가진다. 진보 자유주의자는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개량의 길을 선호한다._p 243

그리고 진보와 자유의 가치가 결합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진보정치에 자유주의적 기풍과 철학이 필요하다. 이것을 갖추기만 한다면 우리나라진보정치운동은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_p 244

유시민은 마지막으로 능력 있고 책임 있는 진보정치를 위한 연합정치를 주장한다.

진보의 힘이 순수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진보의 힘은 섞임에서 나온다. 하나의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성이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정치조직에서도 이성의 힘이 자라기 어렵다고 믿는다. _p 282

우선 나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동시에 모두가 원하는 훌륭한 국가를 세우기 위한 토론을 활발히 진행하자는 제안도 매우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유시민의 진정성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의 현실부터 어떻게 좀 해봤으면

유시민은 이 책을 왜 썼을까? 국가로 하여금 정의를 세우게 하기 위한 진보적 자유주의의 목소리라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유시민이 스스로를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규정하기까지의 고민, 통합진보당과의 건설과정에서의 고민에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유시민은 능력 있고 책임의식을 지닌 진보정치를 만들고자 하는 열의를 이 책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이 하나의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통합진보당, 제 3의 정당이 된, 대한민국 유일의 진보정당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보수에 버금가는 이념의 경직성, 대중정당으로서의 취약성,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극단의 패권주의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연합정치의 대승적 평가와 진보적 가치에 관한 뜨거운 토론과 구현을 위한 고민은 온데간데없다.

지금은 서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낯선 것에 대해 경계심과 적의를 품으니까’

저자의 제안대로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 진취적인 국가론을 세위기 위한 토론을 어서 시작하자. 진보적 자유주의와 함께 ‘정의란 무엇인가’로 히트를 친 마이클 센델의 공동체주의도 있고, 민주노동당에서 내놓은 진보적 민주주의도 있다. 지금의 사태를 현명하게 해결하고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열어놓고 토론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

이 책 저자에게 단 하나 바란다면, 이 책에 서술된 대로 진정성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진보를 찾아 헤매는 국민들이 지치지 않게! 깨어있는 시민들이 통합진보당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