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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책장

페미니즘의 도전_ "착한 여자는 천당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_ 정희진 (2005. 교양인)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답답하다고 느낀다.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 예를 들면 사람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부터 사람에 의해 발생하고 존재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지향성’ ‘정치성’을 띠는 것인데, 정치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일까?

개인적인 고민조차도 <나와 비슷한 다른 이들도 모두 하고 있는 고민>으로 인정하고 공유하는 순간,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되기 마련이며 그러한 영역은 노동에서 복지영역까지, 등록금에서 육아문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개인은 혹사시킬지언정 정치는 외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사실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당위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성이라는 주제, 별로 관심 없는데”

최근 누군가의 질문에 내가 한 대답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라는 여성의 대답이 이렇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탓하겠는가. 무식이 용감이라더니……. 정말 가관이다. 여성-여성주의에 대한 편견이 있음이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기도 하다.

여성주의에 대한 편견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첫 번째 편견은 ‘남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남성은 여성을 성적대상 혹은 소유의 대상으로만 대한다, 여성의 모든 고통은 남성으로부터 온다, 때문에 남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저항을 해야 한다" 는 식의 주장이 반복된다고 느꼈다. 여성운동의 원동력은 남성들에 대한 피해의식인 것만 같았다.

이런 나에게 여성운동은 남성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여성들이 해나가는 운동이었다. 성폭행 피해자, 가정폭력피해자, 사내 성희롱 피해자들……. 이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처럼 생활환경상 남성을 자주 만나지 않는 여성, 가정에서 평균적인(?) 대우를 받는 여성, 자신이 여성으로서 살아가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은 관심가질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왔다.

두 번째 편견은 ‘페미니즘은 주변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는 것이다.

누군가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말 한마디 건네면 주변 분위기는 어색해지곤 한다. 호의로 베푼 남성의 언행은 일순간 무색하게 되고, 여성에게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건 남성이 아니라 발언을 한 그 여성’이 되어버린다.

‘너무 똑똑해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어 버리는 페미니즘, “<여성주의>는 다른 렌즈를 착용했을 때의 눈의 이물감을 준다.”는 저자의 표현은 너무 정확하다.


여성-인권-여성의 언어

페미니즘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피곤한 일이다. 너무나 익숙한 일상의 언어들까지 뒤집어 생각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기 때문이다.

혐오스러운 나이 든 여성 ‘아줌마’와 우리가정을 보살피는 신성한 ‘어머니’라는 단어의 간극

유관순 언니가 아니라 왜 유관순 누나인가

문란한 여성은 있는데 왜 문란한 남성은 없는가.

왜 완경이 아니라 폐경인가

다행히 이 과정을 통과했다면 여성을 상대화 한다는 남성중심의 시선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 다음 단계는 이 언어 사이에 숨은 지배와 폭력의 대상으로서 여성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는 ‘위안부’누드여서 문제인가 위안부‘누드’여서 문제인가

남성은 ‘가정싸움 이후 화해했다’고 말하는데 왜 여성은 ‘구타당한 후 강간당했다’고 말하는가.

남성의 섹스는 왜 ‘잘하는가, 아닌가’ 이고, 여성의 섹스는 왜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인가

여성의 인권이 사람의 인권 가운데 항상 낮은 지위를 (노예와 같은 지위를 차지한 적도 있으니!)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면서도 이 책을 읽는 순간에도 여전히 흠칫 놀라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남성중심의 사고가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도 언뜻 비추고 있다.

한국 야구는 코리안 시리즈인데 왜 미국은 월드시리즈인가

괴테는 세계문학이고 왜 박완서는 제 3세계 문학인가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빨갱이를 죽였다(제주 4.3)”은 논리가 “나는 다른 사람을 때린 것이 아니라 집사람을 때린 것”이라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어쨌든 <페미니즘의 도전>은 나를 편견으로부터 구출해 준 첫 번째 책이 되었다. 단순히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이해시켜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그 정도는 다른 책들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책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페미니즘이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우리를 찾는 과정_ 무조건 상대화하는 것이 아닌_이라고 주장한다.


“착한 여자는 천당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저자는 “착한 여자만이 천당에 갈수 있다”는 시각이 기존 남성 중심적인 생각이라고 할때, “나쁜 여자가 천당에 간다.” 라고 대응하는 것을 여성주의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라고 말하며 사고를 다양하게 만드는데 페미니즘의 진정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서구·백인·남성’이 기준인 이분법적 사고는 낡은 것이며, 여성주의는 성별관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타자들과의 소통, 그리고 다른 사회적 모순과 성차별에 주목하는 사회를 바꿀수 있는 새로운 시선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여성운동 역시 “남자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상대화하자”고 말한다. 사회관계, 인간관계에 기준이라는 것은 없으며, 개별 존재가 상대화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화 되는 시선으로 보이는 것, 이것이 페미니즘이다.

남성-여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빈부격차, 환경파괴, 폭력, 인종증오 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학문이 페미니즘인 것이다. 페미니즘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