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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식/해외

4일차 북중접경지역 답사여행: '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라니....이 기록을 어이할꼬


북중접경지역 4박5일>

4일차 도문-훈춘: 분단의 세월동안 우리 역사는 얼마나 훼손당하고 있나.

 

코리언 디아스포라. 10만이 넘는 이산가족에게조차도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간혹 TV를 통해 이산가족의 상봉을 지켜볼 때 우리에게 아픈 과거가 있었음을 잠시 상기할 뿐. 사실 우리 사회에서 '민족'은 낡음, 구태의연함,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쯤으로 치부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이국에서 마주하게 된 민족의 흔적은 어느 때보다 '민족'을 고민하게 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약 2백만 명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분류한 56개 민족 중 16번째로 많은 숫자다. 그 중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 약 80만 명. 그런데 해마다 인구가 줄어서 자치주 건립초기인 70.5%를 차지했던 조선족 인구비율은 지금은 36.5%로 낮아졌다고 한다. 소수민족 비율이 30%를 밑돌면 자치주가 해제될 위험이 있어서 지금처럼 인구 감소추세가 계속되면 연변이 자치주 지위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연변자치주 인구가 이처럼 줄어든 데는 출산율 감소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학업, 취업 등을 이유로 자치주를 떠난 사람들이 많은데서 비롯된다. 그중 한반도 이남, 대한민국에 들어와 사는 조선족이 약 47만 명쯤이다.

연길의 밤거리. 최근 한국식 노래주점, 단란주점이 늘어나고 있다.

 



 

 

 

 

 

 

 

 

 

 


2,3년 새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노래방, 노래주점, 단란주점... 간판조차 한국말인 연길의 현란한 밤거리가 우리 도시 어디쯤과 매우 닮아 있는 것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한편으로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들이 가진 국가정체성은 중국이지만 한민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

명동촌 대성중학교와 윤동주 생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답사 마지막 일정을 시작한 우리 일행은 윤동주 생가 앞 비석에 새겨진 "조선족 시인 윤동주"라는 문구에 말을 잃었다. 최근 윤동주 생가를 새 단장하는 과정에서 세워진 비석이라고 한다. 중국은 우리 민족시인 윤동주를 중국인, 소수민족의 시인으로 기억하려는 것이다.

 

윤동주 생가 입구 ‘중국조선족애국시인’이라고 씌인 비석

   

 

 

 

 

 

 

 

 

 

 

 

 

 

명동촌 대성중학교에는 일제 치하에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이국땅 간도에 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길러 싸우던 선열들의 역사가 보존되어 있었다. 용정의 대성, 은진, 영신, 동흥 등의 중학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항일애국 지사들을 양성한 민족교육의 중심지였다. 항일독립의 뜻을 둔 겨레의 젊은이들이 조선에서 러시아 연해주에서 동북의 남북과 북만에서 용정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윤동주, 문익환, 이상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름부터 리종옥, 김책, 리동광 등 항일무장투사들에 이르기까지. 용정은 우리가 품지 못하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용정 명동촌 대성중학교.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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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의 이산은 '식민화'가 가져온 결과였지만 일제 식민지배가 분단으로 고착되면서 민족의 이산 문제는 지금까지 방치되어 왔다. 재중 조선족이나 재러 고려인, 재일 조선인이나 탈북자들은 민족적 동일성을 향한 욕망이 클수록 한국이나 한국인들에게서 더 많은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가 자신들을 '형제'로 바라봐주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민족인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다. 한국인들이 코리언 디아스포라 가운데서 특히 '재미동포'와 '재중동포'를 차별대우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제대로 수용하고 있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조선인의 역사를 자기 소수민족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을 탓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윤동주 생가를 떠나 일행이 도착한 곳은 두만강 상류에 위치해 있는 도시 도문. 약 521km길이의 두만강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국경을 나누는 강으로 중국에서는 도문강으로 불린다. 중국 도문과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시가 도문대교(투먼타차오)로 연결되어 있다.

노래에서 듣던 것과 달리 두만강은 온통 흙탕물. 전날 백두산에 비가 내려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중국의 상류개발 때문이라는 게 정설인 듯. 본래 두만강 유역은 임산자원이 풍부한 임야지역으로 두만강 재(材)라 불리는 뗏목이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강의 결빙기(11월 하순에서 3월 상순까지)를 피하여 하류인 회령까지 목재를 유송(流送)하였으나 무산선과 백무선 등 삼림철도의 개통으로 지금은 육지로 목재운송이 이루어진다.

전에는 목재를 나르던 그 두만강 뗏목을 타고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북녘 땅을 다시 한번 건너다본다. 압록강에서처럼 가까이 우리 땅(?)을 두고도 쉽게 넘나들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두만강 뗏목, 중국 도문과 북한 온성군을 잇는 도문대교가 멀리 보인다.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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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3국 접경에서 마주한 '분단'의 현실

이제 답사의 마지막 코스인 훈춘.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동쪽에 위치한 훈춘은 남쪽은 두만강을 경계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라선직할시에, 동쪽은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중러 3국 접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니 저 멀리 동해가 눈에 들어와 박힌다. 낚시하는 러시아의 농부와 아이들도 보인다.

새삼 우리가 알고 있는 국경은 가시 박힌 철조망뿐이었음이 떠올랐다. 물론 이곳에도 중국과 러시아를 나누는 철망이 있긴 했지만 절대 접근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휴전선, 가시박힌 철조망으로 우리의 상상력조차 가두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훈춘의 조중러 3국접경 전망대

 

 

 

 

 

 

 

 

 

 

 

 

 

 

 

 

 

사진 오른쪽이 북, 왼쪽이 러시아. 멀리 동해가 내다보인다.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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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답사의 마지막 코스로 훈춘을 택한 것은 우리 답사의 주요 테마 중 하나였던 '남북교류협력의 미래'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3국이 접한 훈춘은 앞으로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연결하는 물류 허브로서의 역할, 기대가 높은 지역이다. 특히 북한의 나진항과 청진항으로 통하는 직행로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이 훈춘을 국제합작시범구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나진항 이용이 일대 물류혁명을 가져올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동북지역 화물을 나진항을 통해 중국남부로 운송할 경우 엄청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으로 가는 최단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중국의 장지투(창춘-지린-투먼·훈춘)개발계획, 러시아의 극동개발계획, 러시아와 중국의 나진항 진출, 북중러 자유관광지구 지정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중국과 러시아, 북한은 접경지역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미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간단히 떠올려 봐도 시베리아 횡단철도(TST)와 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결, 남북러 가스관 연결 등 남·북 경제협력과도 이해가 맞물려 있다.


하지만 막상 북중러 접경지역에 이르니 '교류협력의 미래'보다 답사기간 내내 우리를 아프게 짓눌렀던 무언가와 더 또렷하게 만나게 된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자 했던 미래는 처음부터 거기 없었는지도 모른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것, '분단'이 거기 있었다.

우리 삶의 현장에선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민족', '이산'이라는 말을 고스란히 삶으로 품고 있는 사람들, 머지않아 사라져버릴지 모를 우리의 역사유적들, 우리가 알아서도 기억해서도 안 된다고 배워온 근현대사의 다른 기록, 그리고 지금은 가볼 수 없는 북녘 땅.

접경지역에는 우리 밖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전쟁, 식민, 이산, 분단으로 얼룩진 민족의 근현대사와의 만남은 때로 불편했으며 '우리는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 애통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화, 공존, 통일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현실임을 깨닫는다.

'분단'만큼이나 여전히 '통일'은 멀고 어렵다. 접경지역에서 만난 분단과 민족을 잊지 않기를. 그래서 작은 힘이나마 분단극복을 위해, 새로운 역사를 위해 손맞잡고 머리를 맞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뿐이다.

 

 

함께 다녀온 이의 다른 글을 펌합니다]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03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