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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책장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_유시민 "정신이 남에게 종속되면 품격과 존엄을 잃게 된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

_유시민 (2013.10) 돌베게


2012년 대선은 한국사회에 다시없을, 다시 없어야만할 이념대립의 최정점을 보여주었고, 군사독재시절의 의혹과 불법을 재현했다. 보수진영은 문재인 후보가 노무현의 측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떨어질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은 노무현을 대상으로 온갖 폭언과 왜곡을 쏟아내었다. 그 최전선에 있었던 사건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이었다.

결국 보수진영의 집권에 대한 욕망은 정상회담 기록문 공개라는 전무후무한 외교적 망신을 낳았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노무현과 김정일, 두 사람의 공개된 정상회담 기록문을 풀어 써놓은, 혹은 재현해서 해설해놓은 책이 바로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이다. 노무현의 NLL포기발언은 대선이 있기 전 11월부터 솔솔 나왔고, 이 책은 한해가 지난 201310월경에 쓰였다.

해명할 수 있는 당사자인 노무현도 김정일도 죽었는데, 어차피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는데, 책이 무슨 의미인가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단 만큼, 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법이라는 진리를 믿고 싶기 때문에, 진흙탕 싸움 때문에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피로하다고 느끼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뒤늦게나마 이 책을 읽었다. 나는 20147월에 읽었다.

저자 유시민의 말대로 남북 정상회담문은 어쩌면 우리사회에서 고도의 정치적인 주제들이 가장 정치화된 언어로 점철된 문장들의 기록일 것이다. 심지어 대화를 나눈 당시 표정과 행동이 삭제된 채 글로 남겼으니 제대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다들 연예인만큼이나 바쁘게 산다고 한다. 학업과 직장 일에서 사업과 육아까지, 생활인으로서 일상사를 잘 처리하기도 힘이 든다. 대화록 전문은 차치하고, 언론보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대화록은 대충 읽어서는 제대로 독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_p13

 

하지만 이런 사실을 간과한 채, “바쁘니까” “잘 모르니까라는 자기합리화속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왜곡되어 바람처럼 스치는 유언비어가 되어 카톡을 타고, SNS를 타고 떠돌아 다녔다. 마치 괴담처럼, 망령처럼

유시민은 당시 남북정상회담 기록문을 꼼꼼히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한 책이라고 했다. 아쉽게도 정작 저자는 남북정상회담 당시 동석하지 않았다.

저자의 목표에 걸맞게 이 책은 매우 친절한 해설서이다. 한편으로 노무현의 측근인 유시민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하여 당시 상황을 유시민이 아는 노무현 스타일을 첨부하여 재현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NLL포기발언공방과정과 팩트 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비판하고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지 않았던 배경,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북미, 한미 관계를 이해하는 역사적 맥락을 알 수 있다.


한편, 분단사회로서 우리나라의 병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책 발췌로 대신한다.

 

김무성 의원의 가족사와 사회경제적 배경을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어떤 언론인이 내가 연좌제를 적용해 김무성 의원을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이것은 옳은 비판일까? 그렇지 않다. 연좌제는 무엇인가. 연좌제는 친족이 한 행위를 이유로 어떤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3조 제 3항은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조선시대처럼 누가 역적모의를 했다고 해서친가, 외가, 처가를 몰살하면 그게 연좌제다. 유신시대처럼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고 아들의 육사 입학을 불하하면 그게 연좌제다. 민주화 이전 우리나라에는 연좌제가 있었다.

김무성 의원의 아버지 김용주씨는 친일행위를 했다고 비판 또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친일행위를 했다고 해서 당사자인 김용주씨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불이익은커녕 적산을 불하받아 큰 재산을 모았고 공직을 했다. 아들인 김무성 의원이 아버지의 친일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연좌제라면, 대한민국에서 친일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 된다._p76

 

대한민국 대통령이 비공개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비판한 것을 두고 격분하는 분들에게 충고를 드린다. 살아가기 위해 친미를 하는 게 아니라 친미 그 자체를 훌륭한 도덕적 규범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 스스로 돌아보자. 사대주의에 젖어 무조건 미국을 추종하고 있지 않은지 자성해보자. 개인이든 국가든 정신이 남에게 종속되면 품격과 존엄을 잃게 된다는 것을, 우리의 선조들이 무엇을 위해 일제 강점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는지를 생각하자. 대한민국은 친미국가지만, 친미와 자주가 반대말인 것은 아니다. 친미국가면서도 자주국가 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_p106

 

북을 생판 억지만 부리는 불량국가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북의 권력자들도 이성이 있으며 합리적인 계산을 하고 합목적적인 전략을 구상하는 사람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대화록에 등장하는 김정일 위원장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발언을 보라. 비록 민생철학과 세계관은 우리와 다르지만 그들 역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때로 타협하고 양보할 줄 안다.

 

한국사회가 대단한 친미국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조금은 쇼킹할 수 있는 책이지만항상 상식적 남북관계, 미국으로부터의 자주를 꿈꿔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내용들이다.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두면 좋을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