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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책장

알랭 드 보통_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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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_ 불안

















불안함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심지어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게하기도 한다.

난 늘 불안, 초조해하면서 무언가 모를 ‘그것’을 갈망하고는 한다.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 이 책을 집어 드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불안이라는 것이 누구나 느끼지만 뭐라 표현하기도 어렵고,
표현해봤자 쪽팔린 ‘구린’감정이라고 생각해온 나로서는 그 감정의 원인을 콕콕 집어서 쿨하게 지적하는 알랭드 보통에게 ‘쳇!’을 날려주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그‘ 원인’이라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든 것을 부정 할수 는 없다.

알랭드 보통에 의하면 불안은 완전히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서 시작한다.

‘나도 사랑받고 싶다’는 것. 타인에 의해 인정받고 싶다는 감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이용하여 처세 책들이 쏟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공동체를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불안한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문제가 여기에서 그쳤다면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치유가 되었을 것이고 심지어 아이를 10명씩 낳아 기를 수 있을 만큼 정신적 여유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의 배경에는

사회가 외치는 능력주의, 기대에 대한 배반, 고용을 비롯한 불확실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고 했다.
그 속에서 나의 지위를 끊임없이 ‘타인과 견주어’ 확인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강한 설득력을 지닌 주장이다.

사실 우리 대화에 종종 출현하는 ‘살기 어렵다’ 거나 ‘친하게 지내자’는 말들은 고등학교때 시험 날 아침 ‘나 어제 공부안하고 잤어’ 라고 말하는 친구를 의심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밥을 굶는다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너가 가진 승용차를 갖고 싶다’는 의미로

‘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이 인생을 나눌 친구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지위와 직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통용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1%가 되지 못한 우리의 심경은 더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중세사회보다 물질적 객관적 지위는 높아졌으나 정서적 심리적 지위는 더 낮아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기나 보다.

결국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불안’ 이 ‘자본주의’사회에 와서는 극도로 심각해지고 극단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자본주의사회는 나의 가치가 저당 잡힌 사회, 인간 존재의 가치가 궁핍한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나는 나에게 수많은 물음을 남기며 책을 마무리했다.

‘처세가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을까?’

‘예술과 철학이 사람에게 어떤 작용을 하기에 해법이 되는가?’

‘죽음에 대한 생각은 왜 사람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질문

‘사람의 지위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가? 아니면 무엇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가?’


.............................
 

우리들은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처세가 아닌 진심으로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 누가 우리한테 사랑을 보여주면 우리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존재에 주목하고,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우리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고, 약점이 있어도 관대하게 받아주고, 요구가 있으면 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관심을 가져주면 우리는 번창한다. ]
                                                                  ....알렝 드 보통 <불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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