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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의 기록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의 기록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_  2012.10.25 마포구 성산동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서울 한복판에 이런 게 있다. 홍대입구 근처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 갖지 않는 주제인데. 

알고 보니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의 기록이 담긴 건물이다. 

이 건물이 들어서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김학순할머니의 증언으로 ‘성노예’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게 1991년인데 

일본대사관 앞에서 1992년부터 시작한 수요 집회가 20년 뒤 1,000회를 넘기고서야 건립되었다. 

2012. 2월 할머니들의 박물관이자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생겼다고 했을 때  

나는 '꼭 가봐야지' 하고 생각하고는 8개월이 지나서야 오게 되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높은 담벼락 그런데 알림간판은 너무 작다.

홍대입구에서 15분 정도 걸어오거나 마을버스를 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근처까지 다 와서 골목에서 두리번거렸다.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를 알아보고 위치를 가르쳐주신다.

옆 골목에서는 주민인 듯했다. 이쯤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많나보다.  

박물관에 다다르고 보니 정말 몇 걸음만 더 가면 찾을 수 있는데 그걸 헤맸다.

마치 보통사람이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심 가질 수 있는데 딱 몇 걸음이 부족한 것처럼 

▲ 수요집회때 할머니들이 타고 다니는 차

아! 반갑다!  올해 초엔가 트위터에서 미디어몽구 (@mediamongu)님이 제안하여 할머니들에게 희망차를 마련해드리자는 멘션을 봤는데 이렇게 예쁜 차였구나. 미디어몽구님도 대단하고 트친들의 뜨거운 반응도 감동이다.

화~금요일 1시~6시까지 운영하지만 수요 집회가 있는 수요일은 3시부터 오픈한다.

우리가 찾은 날은 수요일. 2시 50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입구는 건물을 반바퀴 돌아야 나온다.

건물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히 높은 벽, 답답하리만치 어두운 색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 반 바퀴를 돌아야 좁은 입구를 발견할 수 있다.

▲ 건물 입구는 상대적으로 매우 좁다

전쟁과 여성인권, 사람들이 잘 관심 갖지 않는 주제다.

한국은 반공이데올로기로 점철된 역사, 여성인권이 바닥인 사회니까.  

그런데 전쟁의 피해자인 그들의 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현실이 되기 위해,

80넘은 할머니들, 가장 약자인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시 한복판에 세워냈다.

아직 어떠한 전시물을 보지 않았는데도 벌써 발이 무겁다.

▲ 매표소, 표는 매일 다른 할머니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매표소 앞. 안타깝게도 사진촬영은 금지였다. 가벼운 마음은 아니지만 기록할 겸 출사할 겸 온 나로서는 아쉬울 뿐이다.  

관람순서는 지하→2층→1층 순으로 되어 있다. 지하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 소녀 실루엣이 그려져 있다.

지하계단으로 걸어 내려가면 군인들의 군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나는 왠지 모를 무서움과 두려움이 들어 좀처럼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지하 천장은 너무 낮았다. 할머니 한분 한분의 인생이 담긴 기록영상이 나온다.

그 옆에 마련된 <할머니들의 공간>은 좁고 낮았다. 가운데 멍석과 고무신 하나만 있을 뿐이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이곳이 '위안소'라는 알 수 있다.

한 발 한 발 들여놓을 때마다 사진으로 기록할 수 없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진촬영금지인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인데 일본 정부는 왜 증거가 없다고 합니까?"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겪은 일을 다 알았으면 좋겠어."

사진으로는 담아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카메라 렌즈 대신 필기도구를 꺼냈다.

셔터를 누르는 대신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였다.

자신들의 역사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는 할머니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박물관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의 역사를 보고 배워서 우리처럼 속지도 말고

우리처럼 그런 수난도 당하지 말고, 그렇게 험난한 세월을 보내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 김준기교수의 <소녀이야기> 11분의 애니메이션을 위해 3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2층에 올라와서는 김준기의 <소녀이야기>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헤드셋에는 할머니들의 실제 육성이 나온다.

그 옆에는 일본 정부에서 군인에게 지급한 콘돔이 전시되어 있다. 콘돔이름은 ‘돌격1호’이다.

"일본군'위안부' 범죄의 중대성은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이 전쟁을 빌미로 국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있다는데 있다."

▲ 사진찍는 게 허락되는 유일한 전시물

2층 오른편에는 20년간 1,000회가 넘는 수요 집회의 기록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맨발에 두 주먹을 꼭 쥐고 있는 소녀상, ‘평화비’다. 옆에 비어있는 의자 때문인지 너무 슬퍼 보인다.

추모실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성함과 돌아가신 날짜가 새겨진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2012.08.31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발견했다. 생의 마지막까지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고자 했던 노력들과 박물관에 새겨진 기록으로 이들의 삶은 어제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는 현재이다.

2층을 돌아보는 내내 울컥하는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여 남긴 기록들

이 건물을 짓기까지 도와준 사람은 오직 시민들이었다.

정부는 “사회갈등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여 지원해주지 않고 기업은 “기업이미지에 맞지 않다고”고 하며 거절하였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사람들마저  "할아버지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손녀들이 치고 올라오면 안 된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과 독립운동을 폄하시키는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면서 서대문 독립공원에 박물관 짓는 것을 반대했다.

▲ 1층에는 전쟁에서 여성의 피해, 이 건물을 짓기까지의 어려움이 적혀있다.

관람을 마친 우리는 20년간의 수요일(윤미향 정대협 대표)과 희망으로 쓰는 역사(사진첩)를 사고 마당으로 나왔다. 

 

재작년 처음으로 내가 속한 모임에서 수요 집회를 주관한 적이 있다.

다 아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본군‘위안부’문제였는데 주관하려고 하니 다 다시 생각해야했다.

'어떤 말을 하면 할머니가 위로받을까' 에서부터 '정말 할머니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관하는 우리가 어떤 말을 해야 기분좋아하실까' '정말 내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할머니들 기록영상도 유심히 보고 홈페이지에 올라온 그동안의 수요 집회 결의문도 꼼꼼히 읽었다. 준비하면서 많은 눈물을 쏟았다.

수요 집회는 5월 5일 어린이 날이었다. 가족단위로, 학교학생들이, 우리처럼 사회모임이 의미 있게 참여해주었다. 100명이 넘게 왔었다.

사회멘트도 점검하고, 퍼포먼스도 점검하고, 참가자 명단도 확인하느라 정신없었다. 막상 당일에는 행사를 잘 해내는데 온 신경이 쓰였다.

그날을 그렇게 보내고 2년이 흘렀다.

박물관을 벗어나면 난 또 일상 속에서 살고, 뉴스로 신문기사로 할머니들과 정대협의 소식을 접하면서도 무딘 반응을 보이겠지만 스스로 자각하기 위해 되돌아올 공간이 있다는 것은 어쨌든 감사하다.

역사와 현재 앞에서 부채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사회적 인간으로서 노력하며 사는데 큰 힘이 되니까.

 

 

written by 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