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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식/서울 핫 플레이스

서울 풍물시장> 나의, 그리고 서민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현대판 민속박물관

서울 풍물시장

서민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현대판 민속박물관 _ 2012. 11 .11 서울 풍물시장(황학동 도깨비시장)

 

날이 우중충하다.비도 오고 바람도 세게분다. 아마 <노출>의 출사가 아니었으면 사진찍기를 무조건 포기했을 날씨다.

계획한 걸 취소하지 않게 되는 건 온전히 동호회 사람들 때문이다.

지하철 안에서 플랑을 펴고 동호회 사람들을 기다렸다. 5~60대 아저씨들이 관심을 보인다. 자꾸 물어보는데~단호하게 2030 동호회라고 말해주었다.

 

처음 사진동호회를 만들때만 해도 <노출>이라는 이름이 어색했는데 지금은 '이보다 더 좋은 사진동호회 이름이 어찌 있을수 있나'하는 생각마저 든다. 입에 착착붙는다. '사람과 세상을 담다'는 부제 역시 고상하고 풋풋한 우리 동호회와 잘 어울린다.

처음 풍물시장을 가려고 인터넷에 명칭을 검색했을 때는 매우 헷갈렸다. 누구는 풍물시장이라고 하고, 누구는 벼룩시장이라고 하고 누구는 도깨비시장이라고 하더라.

황학동 시장은 한국전쟁 직후에 형성되었다. 가난했던 시절 팔수 있는 것들이라면 고물부터 집에 있는 물건까지 죄다 들고 나와 물물교환을 하기 시작했던 곳, 한편 당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용물품들 흔히 말하는 미제물건을 쉽게 구할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당국의 단속이라도 나오면 미제물건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일반 국산물건들로 자리를 바꿔치기 했단다. 그래서 도깨비 시장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이런 <도깨비시장>은 전국적으로 존재했었고 인천의 <양키시장>은 대표적인 곳으로 유명하다.이 시장덕분에 사람들은 카라멜 초콜릿 바세린 화장품이라는 것도 구경하게 되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복을 사서 까맣게 염색해 입고다니는 유행을 만들기도 했다.

황학동 풍물시장은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다양하고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옛날 장신구와 생활물품에서 부터 고가구, 구제의류, 희귀음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렸을 적 추억이 담긴 물건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흑백텔레비전, 엄마아빠가 맞벌이로 일하러나가면 꼬마인 나와 내 동생들이 줄줄이 앉아서 3시간이고 4시간이고 티비만 봤다. 그러던 어느달 텔레비전 위에 올라서서 점프놀이하다가 텔레비전이 넘어졌는데 화면이 깨지면서 까맣게 되었다. 엄마한테 혼날 걱정보다 퇴근시간까지 우리를 놀아줄 티비가 고장났다는 사실에 세남매는 펑펑 울었더랬다.

어린 나는 일하러 나간 엄마에게 종종 전화를 걸어 "엄마 언제와?"를 묻기도하고 "올때 호떡사와" 라고 하기도 하고 "동생이 내꺼 요구르트 훔쳐먹었어" 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전화다이얼이 무거워 좀처럼 돌아가지가 않는거다.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하고 싶은데. 그래서 손가락 하나를 넣고 다른 손으로 그 손가락을 꼭 잡고 같이 돌렸다.

아직 사용가능하단다. 그때는 어디다 그렇게 전화를 걸었을까?

어느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오는 길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고 공중전화박스를 들어갔다.

20원인줄만 알았던 전화비가 50원이 되어있었다. 잔돈이 부족한 나는 전화를 걸지못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말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어떻게 20원인 전화비가 한꺼번에 50원이 된단 말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앞으로는 세상이 더 빨리 변할텐데'

중학교때 친구들과 놀자고 만나도 별로 할게 없었다.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거나 누구네집에 가거나 떡볶이를 먹는게 전부였다. 대화주제는 맨날 똑같았다. 그래도 매일 약속하고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럴때마다 한 병씩 사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었던 음료. 맥콜은 가끔 주로는 오란씨로~

요즘 내 꿈은 2~3년 이내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동유럽을 횡단하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달리는 거다. 핀란드 체코를 들르고 싶다.

 

앗 너무 추억에 잠겼다.

예쁜 소품

전통소품부터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취미물품에서부터 뱀술등 건강식까지 없는게 없는 시장이다.

반가운 맘에 담아본 성냥갑. 왜? 나랑 같은해에 태어났다. 얘도 32살이라는 이야기.

사람 32살이면 이제부터 활활 타오를 시기, 이 성냥은 켜지기나 할런지, 한갑에 만원이란다.

 

심지어 일제시대에 사용된 정종 병을 발견할수 있었다. 주인아저씨의 설명이 아니면 고물인지 쓰레기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병당 가격은 무려 10만원이다. 하긴 90여년이나 주인이 보관해 온 정성을 생각하면 그리 높은 값이 아닐지도. 이 시장에서는 일제시대 물건 정도는 쉽게 구할수 있나보다.

이 할아버지가 들고있는 이발기(일명 바리깡)도 일제시대부터 사용된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재현할아버지다. 자신이 팔고있는 오래된 물건들을 신기해하는 우리를 위해 사용법을 직접 보여주셨다.

어떻게 생긴지도, 사용하는지도 모를 만큼 낯선 물건들을 발견한 것보다 더 흥미있는 것은 상인들과의 대화였다. 상인이기전에 할아버지 할머니인 이분들은 손자손녀 나이인 우리들에게 한가지라도 더 설명해주시려고 했고, 그 시간을 자신들도 즐기시는 듯 했다.

어색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출사를 다녀온 후 시장에서 본 수많은 물건보다 이 재현할아버지와 교복대여할아버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일제시대부터 7~80년대 교복까지, 교련복에 군복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는 가게. 그런데 이 할아버지 옷을 파는데는 관심이 별로 없는듯하다. 우리가 교복으로 갈아입고 단체사진 찍는 모습을 보는 걸 더 좋아하신다. 심지어 갈아입고 사진찍는 건 무료다. 참 인상좋으신 할아버지였는데 시장에 손님이 예전만큼 많지 않아서 조금 걱정이신 듯했다.

런닝맨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방송나간 후 2주동안은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면서 물건을 사지 않아도 좋으니 많이들 왔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오랜만에 젊은이를 만나서 신나서인지,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우리들 덕에 손님이라도 조금 더 생길까하는 기대감때문인지 상인들도 관리소도 매우 협조적이다.  골동품들이 몰리면서 1970~80년대에는 전성기를 누리는 최대 중고시장이었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한다고해서 동대문 운동장에 노점상으로 밀려났다가 동대문 운동장이 새로 짓는다고해서 황학동으로 밀려나면서 사람들이 황학동 벼룩시장이 없어진줄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게다가 대형마트에, 인테리어 숍에, 전자대리점에 밀려 손님들이 잘 찾지 않는다고.

 

산더미처럼 쌓아둔 고물들 사이에서, 오래된 물건들 사이에서 최근 핫이슈인 <대선 후보와 박근혜>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60년 넘게 이어온 시장은 그 세월만큼이나 역사와 다양성을 담고 있었다.

물론 최근의 '변화속도'와 세상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도 물론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라져도 좋은 것일까?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그리고 복잡하게 변할 것이다.

'오래된 것은 낡은 것과 동의어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모두 '최신'을, '유행'을 선호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삶만큼은, 사람만큼은 아니다.

추억을 간직할 수 있을 만큼, 여유있게 세상과 소통할수 있을 만큼, 적응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닐지.

written by 영심

 

*도깨비시장

‘도떼기시장’ 의미로 ‘돛대기시장, 돗데기시장’을 쓰는 경우가 있으나 ‘도떼기시장’만 표준어로 삼는다.

상품, 중고품, 고물 따위 여러 종류의 물건을 도산매ㆍ방매ㆍ비밀 거래 하는,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한 비정상적 시장. [비슷한 말] 도깨비시장.

 

'아무이유 없이, 그냥 하고 싶어서' 시작한 첫 취미_ 사진찍기,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노출> http://cafe.naver.com/peacehue 은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이 같이 출사를 나가서 각.자. 알.아.서. 사진찍는 그런 모임이 아니다.

무엇보다

1. 기존 회원들이 초보들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시간이 있고

2. 5인1조로 편성해서 사진기술에 대해 쉽게 물어볼수 있다^^ (이거 정말 좋다! "여기서 사진 왜 이렇게 나오지? " 하면 바로 대답해준다 ㅋㅋ)

3. 출사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 및 역사배경도 함께 공유한다. 사진찍기 전 약 10분정도 진행되는데 지식쌓는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4. 사진 찍은 후 카페에서 베스트 컷을 뽑고

5. 씬나게 뒷풀이 ㅋㅋ